절제됨과 화려함, 비움과 채움...- 용인대, 전주대 공연을 보고
Posted 2008/07/04 00:00, Filed under: Review/타인의취향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위선자 따르뛰프’ 2008년 6월 24일 오후 2시 공연관람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로미오와 줄리엣’ 2008년 6월 26일 오후 5시 공연관람
용인대학교 연극학과의‘위선자 따르뛰프’는 세련되고 절제된 훌륭한 공연이었으며,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의'로미오와 줄리엣'은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한 뛰어난 공연이었다.
나는 두 대학의 공연이 이번 제16회 젊은 연극제의 수작(秀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 모두 대학생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으며, 공연양식 또한 매우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연은 그들이 대학생임을 감안한다 해도 기성극단이나 국립, 시립 극단의 작품에서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내가 이렇게 두 대학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아직 배우는 학생이기에 한국 연극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이고, 또 하나는 젊은 연극제에 참여한 타 대학과 기성극단에 조금의 파급효과라도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보는 시각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거나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 일 수 도 있다. 이런 칭찬이 그들에게 약간의 부담이 될 수 도 있다. 사실 약간의 부담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내년에도 이렇게 좋은 공연을 또 볼 수 있을 테니까. 어찌되었든 두 대학의 공연이 객관적으로도 매우 좋은 공연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먼저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를 보면
피터브룩의 ‘한여름 밤의 꿈’이후 연극적 ‘빈 공간’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어 관객에게 낯설지 않게 되었다.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도 이런 인식에 철저히 따르고 있다.
흰색의 빈 공간에서 오로지 배우에 의해서 공연이 주도 되었다. 공연의 중심은 철저히 배우였으며,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배우들은 역할에 충실하여 그 빈 공간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그리고 희극적 리듬과, 템포와, 무게와, 색과 질감으로 그 빈 공간을 채워 나갔다. 이런 희극적 요소를 재료로 멋진 요리를 만들어 갔다. 달콤하면서 매콤한, 부드러우면서 톡 쏘는, 담백하면서도 상큼한 작품을 단아하면서 격조 높은 그릇에 담아냈다. 마치 청화백자처럼.
배우들의 움직임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절제되었으며, 배우들 대부분은 빠른 속도의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또한 자신의 배역에 맞는 신체 이미지를 잘 찾았으며, 배우들 간의 앙상블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배우들은 ‘절제’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하지만 전반부의 희극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희극적 요소가 중반부의 따르뛰프와 엘미르의 장면에서 조금 떨어지고, 후반부 따르뛰프와 엘미르, 오르공 장면에서는 약하고 유지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물론 작품전체의 숨고르기를 위한 템포조절이라고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멀티미디어(Multimedia)에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학과의 특성을 잘 살려 한 판 신나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국립무용단에 버금갈 정도로 신명나는 춤과 음악은 눈과 귀가 즐거운 화려한 놀이판이었으며, 배우들의 다양한 재능이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로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극장을 가득 채워 머리부터 발끝까지 울렸던 북소리며,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춤사위와 노래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자칫 지루하거나 늘어지기 쉬운 장면에서 희극적 인물의 등장과 코믹릴리프(comic relief)에서의 역할은 적절했으며, 빠른 장면전환도 기능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배경 막과 바닥 천, 소도구, 음악, 조명과 의상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이 작품을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갔다. 매우면서도 개운한, 새콤하면서 맛깔스러운, 시원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작품을 고혹적이면서 화려한 그릇에 담아냈다. 마치 상감청자처럼.
배우들은 작품 전체의 극적 긴장과 이완에 충실했으며, 역동적이었으며 자신의 개성과 열정을 화려하게 무대에 가득 채웠다. 무대의 높낮이를 이용한 배우의 위치와 움직임 또한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었다.
배우들은 ‘화려함’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한 나머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중심테마가 약화된 면도 있었다고 생각되어진다.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에 가려 정작 봐야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이 이미 보편성을 획득하였기에 굳이 강조하거나 자세한 설명할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나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을 훌륭한 작품으로 만든 요소들 중 하나로 스텝들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배우나 스텝이 공연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연출과의 주종관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학생들이기에 지도교수나 선배들의 조언과 충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임으로써 학생들은 배우고 성장하고 자신이 꽃 피울 예술적 토양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니까.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의 무대는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의 ‘바다의 여인(The Lady from the Sea)’이나,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의 ‘창세기(Genesi)’ 만큼이나 뛰어났다. 무대를 비우고 흰색의 빈 무대에 단 하나의 작은 출입문을 둠으로써 배우들의 연기를 극대화 시켰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무대 미술적 가치는 충분했다.
의상 또한 매우 훌륭했다. 아르공 일가는 배역의 성격에 알맞은 색의 의상이었으며, 나머지 배우들은 무채색인 흰색과 검은색의 의상을,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따르뛰프는 검은색과 엘미르와 같은 붉은색 계통의 셔츠를 입었다. 모든 의상은 세련되고 간결했다. 외부인과 내부인, 배우들의 관계와 극중 위치가 잘 고려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조명과 음악과 소품은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했다. 현란함이나 적극적인 무대 참여를 절제함으로서 배우에게 관객을 집중하게 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의 스텝들은 ‘비움’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태석식 표현방법’에 그 화려함을 더 했다. 높이가 있는 뒷 무대와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주무대공간은 그 활용도에 있어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두 개의 배경막의 사용 또한 시각적, 기능적으로 뛰어났으며(공연 때 흰색 배경막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지만), 붉은 색 바닥천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이 작품의 백미였다.
의상은 한복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무대에서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 작품의 화려함을 극대화 시켰다. 다만 두 남녀 주인공이 같은 패거리들의 의상과 차이점이 적었고, 오히려 영주나 패리스의 의상이 로미오와 줄리엣 의상보다 상대적으로 눈에 더 들어왔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소품은 매우 기능적이었으면, 조명과 음악은 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섬세하고 다양한 시도로 무대를 효과적으로 가득 채웠다. 무대에 적극적인 개입으로 함으로써 배우를 도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텝들은 ‘채움’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절제되면서 세련된 희극적요소가 충만한 희극공연을 보는 것은 정말 즐겁다.
화려하면서 다양한 볼거리가 충만한 흥겨운 공연을 보는 것 역시 즐겁다.
그러나 두 학교의 공연 보고 뭔가 조금은 빠진 듯한,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것이 있는 듯 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약간의 허기짐을 느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 허기짐의 정체는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의 경우, 이 공연이 ‘세 번이나 공개 금지되어 개작을 불가피하게 한 이유가 당시 교회의 고위 교직자들의 부패한 생활을 폭로한 대담한 희극이었기 때문’이라는 작품설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는 과연 무엇을 폭로했고, 무엇을 풍자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젊은 연극제에서 공연된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는 현재 교회의 고위 교직자들의 부패한 생활을 폭로한 대담한 희극임이 유효한지를, 또한 현재 무엇인가를 폭로하여 세 번이나 공개 금지되어 개작을 불가피할 정도로 대담한 희극으로 만들었는지를.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두 가문의 숙명적인 관계가 과연 사랑하는 두 젊은이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만큼 절대적인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두 가문의 적대적 관계는 인위적인 구조이고, 사랑하는 두 젊은이는 그 구조 안에서 두 가문의 올가미에 걸려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리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들 목에 걸린 가문의 올가미는 더욱 조여 온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랑하는 남녀는 죽는다. 인위적인 구조가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 간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 즉 사랑하는 것과 인위적인 구조가 갈등할 경우 결국 올가미에 걸린 가여운 젊은이들이 죽는 것이고, 사랑이 희생되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올가미, 즉 인위적인 구조 안의 조건들은 제거 되어야한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 스스로가 제거하여야만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가문의 화해로 끝이 나는 것이다. 비록 소중한 것을 잃어 버렸지만, 더 늦기 전에 인위적인 구조와 조건들을 제거하기 위해.
하지만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주 충고에도 불구하고 두 가문의 가장이 직접 칼을 들고 부딪침으로 작품이 끝난다. 두 가문의 반목과 질시는 계속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인위적인 조건 안에 자연스러운 것들을 통제 하려는 것인가. 글쎄...
나는 그저 그릇의 아름다움과 음식의 맛을 신경 쓰느라고 혹시 음식의 영양가와 건강함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
유럽문예의 쌍두마차격인, 아니 적어도 세계의 연극역사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산맥과 같은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 몰리에르의 작품이 한국의 대학생들에 의해서 공연 되었다. 두 대학의 공연은 두 작가의 차이만큼이나 공연을 풀어 나가는 방법이 확연히 달랐다.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는 서양연극의 흐름에 따라 전형적인 현대연극의 공연양식을 보여 주었고,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서양연극의 틀에 접목시켜 현대연극의 또 다른 공연양식을 보여주었다.
용인대학교의‘위선자 따르뛰프'는 무대를 비움으로서, 배우를 돋보여 작품을 빛나게 했으며,
전주대학교의‘로미오와 줄리엣’은 무대를 채움으로서, 배우를 돋보여 작품을 빛나게 했다.
[출처] 2008-06-27 08:12:29 by 희수아빠
http://www.ytf.or.kr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로미오와 줄리엣’ 2008년 6월 26일 오후 5시 공연관람
용인대학교 연극학과의‘위선자 따르뛰프’는 세련되고 절제된 훌륭한 공연이었으며,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의'로미오와 줄리엣'은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한 뛰어난 공연이었다.
나는 두 대학의 공연이 이번 제16회 젊은 연극제의 수작(秀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 모두 대학생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으며, 공연양식 또한 매우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연은 그들이 대학생임을 감안한다 해도 기성극단이나 국립, 시립 극단의 작품에서조차 보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내가 이렇게 두 대학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아직 배우는 학생이기에 한국 연극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이유 중 하나이고, 또 하나는 젊은 연극제에 참여한 타 대학과 기성극단에 조금의 파급효과라도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관객이 공연을 보는 시각을 한 단계 높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거나 어쩌면 내가 바라는 것 일 수 도 있다. 이런 칭찬이 그들에게 약간의 부담이 될 수 도 있다. 사실 약간의 부담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내년에도 이렇게 좋은 공연을 또 볼 수 있을 테니까. 어찌되었든 두 대학의 공연이 객관적으로도 매우 좋은 공연이었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먼저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를 보면
피터브룩의 ‘한여름 밤의 꿈’이후 연극적 ‘빈 공간’에 대한 인식은 확대되어 관객에게 낯설지 않게 되었다.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도 이런 인식에 철저히 따르고 있다.
흰색의 빈 공간에서 오로지 배우에 의해서 공연이 주도 되었다. 공연의 중심은 철저히 배우였으며, 용인대학교 연극학과 배우들은 역할에 충실하여 그 빈 공간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그리고 희극적 리듬과, 템포와, 무게와, 색과 질감으로 그 빈 공간을 채워 나갔다. 이런 희극적 요소를 재료로 멋진 요리를 만들어 갔다. 달콤하면서 매콤한, 부드러우면서 톡 쏘는, 담백하면서도 상큼한 작품을 단아하면서 격조 높은 그릇에 담아냈다. 마치 청화백자처럼.
배우들의 움직임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절제되었으며, 배우들 대부분은 빠른 속도의 대사를 무리 없이 소화했다. 또한 자신의 배역에 맞는 신체 이미지를 잘 찾았으며, 배우들 간의 앙상블 역시 부족함이 없었다.
배우들은 ‘절제’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하지만 전반부의 희극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희극적 요소가 중반부의 따르뛰프와 엘미르의 장면에서 조금 떨어지고, 후반부 따르뛰프와 엘미르, 오르공 장면에서는 약하고 유지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물론 작품전체의 숨고르기를 위한 템포조절이라고 생각하면 나 자신에게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멀티미디어(Multimedia)에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학과의 특성을 잘 살려 한 판 신나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국립무용단에 버금갈 정도로 신명나는 춤과 음악은 눈과 귀가 즐거운 화려한 놀이판이었으며, 배우들의 다양한 재능이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로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극장을 가득 채워 머리부터 발끝까지 울렸던 북소리며,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춤사위와 노래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자칫 지루하거나 늘어지기 쉬운 장면에서 희극적 인물의 등장과 코믹릴리프(comic relief)에서의 역할은 적절했으며, 빠른 장면전환도 기능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배경 막과 바닥 천, 소도구, 음악, 조명과 의상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어 이 작품을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갔다. 매우면서도 개운한, 새콤하면서 맛깔스러운, 시원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작품을 고혹적이면서 화려한 그릇에 담아냈다. 마치 상감청자처럼.
배우들은 작품 전체의 극적 긴장과 이완에 충실했으며, 역동적이었으며 자신의 개성과 열정을 화려하게 무대에 가득 채웠다. 무대의 높낮이를 이용한 배우의 위치와 움직임 또한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주었다.
배우들은 ‘화려함’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한 나머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중심테마가 약화된 면도 있었다고 생각되어진다. 화려하고 다양한 볼거리에 가려 정작 봐야할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작품이 이미 보편성을 획득하였기에 굳이 강조하거나 자세한 설명할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나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을 훌륭한 작품으로 만든 요소들 중 하나로 스텝들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배우나 스텝이 공연에서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연출과의 주종관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학생들이기에 지도교수나 선배들의 조언과 충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한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임으로써 학생들은 배우고 성장하고 자신이 꽃 피울 예술적 토양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니까.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의 무대는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의 ‘바다의 여인(The Lady from the Sea)’이나, 로메오 카스텔루치(Romeo Castellucci)의 ‘창세기(Genesi)’ 만큼이나 뛰어났다. 무대를 비우고 흰색의 빈 무대에 단 하나의 작은 출입문을 둠으로써 배우들의 연기를 극대화 시켰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무대 미술적 가치는 충분했다.
의상 또한 매우 훌륭했다. 아르공 일가는 배역의 성격에 알맞은 색의 의상이었으며, 나머지 배우들은 무채색인 흰색과 검은색의 의상을, 젊은이들은 청바지를, 따르뛰프는 검은색과 엘미르와 같은 붉은색 계통의 셔츠를 입었다. 모든 의상은 세련되고 간결했다. 외부인과 내부인, 배우들의 관계와 극중 위치가 잘 고려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조명과 음악과 소품은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했다. 현란함이나 적극적인 무대 참여를 절제함으로서 배우에게 관객을 집중하게 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의 스텝들은 ‘비움’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태석식 표현방법’에 그 화려함을 더 했다. 높이가 있는 뒷 무대와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 주무대공간은 그 활용도에 있어서 매우 효율적이었다. 두 개의 배경막의 사용 또한 시각적, 기능적으로 뛰어났으며(공연 때 흰색 배경막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용하지 못했지만), 붉은 색 바닥천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 이 작품의 백미였다.
의상은 한복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무대에서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이 작품의 화려함을 극대화 시켰다. 다만 두 남녀 주인공이 같은 패거리들의 의상과 차이점이 적었고, 오히려 영주나 패리스의 의상이 로미오와 줄리엣 의상보다 상대적으로 눈에 더 들어왔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소품은 매우 기능적이었으면, 조명과 음악은 이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
모든 분야의 스텝들이 섬세하고 다양한 시도로 무대를 효과적으로 가득 채웠다. 무대에 적극적인 개입으로 함으로써 배우를 도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텝들은 ‘채움’을 통해 작품을 빛나게 했다.
절제되면서 세련된 희극적요소가 충만한 희극공연을 보는 것은 정말 즐겁다.
화려하면서 다양한 볼거리가 충만한 흥겨운 공연을 보는 것 역시 즐겁다.
그러나 두 학교의 공연 보고 뭔가 조금은 빠진 듯한,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것이 있는 듯 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었지만 약간의 허기짐을 느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마도 그 허기짐의 정체는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의 경우, 이 공연이 ‘세 번이나 공개 금지되어 개작을 불가피하게 한 이유가 당시 교회의 고위 교직자들의 부패한 생활을 폭로한 대담한 희극이었기 때문’이라는 작품설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는 과연 무엇을 폭로했고, 무엇을 풍자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젊은 연극제에서 공연된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는 현재 교회의 고위 교직자들의 부패한 생활을 폭로한 대담한 희극임이 유효한지를, 또한 현재 무엇인가를 폭로하여 세 번이나 공개 금지되어 개작을 불가피할 정도로 대담한 희극으로 만들었는지를.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두 가문의 숙명적인 관계가 과연 사랑하는 두 젊은이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만큼 절대적인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두 가문의 적대적 관계는 인위적인 구조이고, 사랑하는 두 젊은이는 그 구조 안에서 두 가문의 올가미에 걸려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리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그들 목에 걸린 가문의 올가미는 더욱 조여 온다. 그리고 결국 두 사랑하는 남녀는 죽는다. 인위적인 구조가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 간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 즉 사랑하는 것과 인위적인 구조가 갈등할 경우 결국 올가미에 걸린 가여운 젊은이들이 죽는 것이고, 사랑이 희생되는 것이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올가미, 즉 인위적인 구조 안의 조건들은 제거 되어야한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 스스로가 제거하여야만 한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가문의 화해로 끝이 나는 것이다. 비록 소중한 것을 잃어 버렸지만, 더 늦기 전에 인위적인 구조와 조건들을 제거하기 위해.
하지만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주 충고에도 불구하고 두 가문의 가장이 직접 칼을 들고 부딪침으로 작품이 끝난다. 두 가문의 반목과 질시는 계속된다는 것인가. 그래서 인위적인 조건 안에 자연스러운 것들을 통제 하려는 것인가. 글쎄...
나는 그저 그릇의 아름다움과 음식의 맛을 신경 쓰느라고 혹시 음식의 영양가와 건강함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
유럽문예의 쌍두마차격인, 아니 적어도 세계의 연극역사에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산맥과 같은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작가 몰리에르의 작품이 한국의 대학생들에 의해서 공연 되었다. 두 대학의 공연은 두 작가의 차이만큼이나 공연을 풀어 나가는 방법이 확연히 달랐다.
용인대학교의 ‘위선자 따르뛰프’는 서양연극의 흐름에 따라 전형적인 현대연극의 공연양식을 보여 주었고,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서양연극의 틀에 접목시켜 현대연극의 또 다른 공연양식을 보여주었다.
용인대학교의‘위선자 따르뛰프'는 무대를 비움으로서, 배우를 돋보여 작품을 빛나게 했으며,
전주대학교의‘로미오와 줄리엣’은 무대를 채움으로서, 배우를 돋보여 작품을 빛나게 했다.
[출처] 2008-06-27 08:12:29 by 희수아빠
http://www.yt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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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ungm의 생각
Tracked from usungm's me2DAY 2008/07/04 00:02 Delete이번 작품의 공연평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무튼 감사합니다. 희수아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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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주대학교 로미오와 줄리엣 연출를 맡았던 류성목입니다. 선생님의 공연평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희 제작진의 의도하였던 것들중, 의도와는 달리 표현되어졌던 것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정확히 파악하고 계신것 같아. 더 완벽한 공연을 위해 매진하여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들었습니다. 관객의 눈은 무섭다라는 것 다시한번 느낍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해주셨던 부분은 분명 차기공연에 큰 조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그것을 수정하여 다듬는데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너무나도 좋은 공연평 감사드리고, 내년에 있을 저희들의 작품에 다시한번 관심을 가져주셔서 예리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